맨위로가기

헨리 월터 베이츠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헨리 월터 베이츠는 영국의 박물학자이자 탐험가로, 특히 아마존 열대우림에서의 연구와 의태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와 함께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지지했으며, 1848년부터 1859년까지 아마존 유역을 탐험하며 곤충, 특히 나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베이츠는 맛있는 종이 맛없거나 유독한 종을 모방하는 '베이츠 의태'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자연 선택의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1863년 저서 『아마존 강의 박물학자』를 출간했으며, 런던곤충학회 회장, 왕립지리학회 부비서를 역임했다. 한국에서도 그의 이름을 딴 여러 곤충이 발견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잉글랜드의 박물학자 - 찰스 다윈
    찰스 다윈은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론을 제시하여 현대 진화생물학의 기초를 세운 영국의 자연과학자이다.
  • 잉글랜드의 박물학자 - 에드워드 톱셀
    에드워드 톱셀은 실제 동물과 신화 속 동물에 대한 고대 전설을 기록했으며, 두꺼비의 두꺼비돌, 족제비의 귀로 출산, 코끼리의 태양과 달 숭배 등을 믿고, 고르곤, 스핑크스, 만티코어, 유니콘과 같은 신화 속 동물들을 책에 포함시켰다.
  • 아마존 우림 탐험가 - 시어도어 루스벨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허약한 체질을 극복하고 다양한 정치 경력을 쌓아 제26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으며, 진보적인 개혁 정책 추진, 러일 전쟁 중재 등 국내외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 아마존 우림 탐험가 -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영국의 자연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찰스 다윈과 독립적으로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 이론을 제창하고, 아마존과 말레이 군도 탐험을 통해 '월리스선'을 발견했으며, 생물지리학, 경계색 이론, 종 분화에 기여하고 환경 문제에 대한 경고와 우주생물학 연구, 심령술에 대한 믿음으로도 알려져 있다.
헨리 월터 베이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헨리 월터 베이츠의 초상
헨리 월터 베이츠의 초상
출생일1825년 2월 8일
출생지레스터, 레스터셔
사망일1892년 2월 16일
사망지런던
안장지이스트 핀칠리 묘지, 런던
분야의태
자연사
지리학
직장왕립 지리학회, 런던
알려진 업적아마존 항해
베이츠 의태
배우자사라 앤 메이슨
수상런던 곤충학회 회장
린네 협회 회원
왕립 학회 회원
경력
아마존 탐험1848년 ~ 1859년
왕립 지리학회 차관보1864년
학회
소속 학회왕립 학회 (FRS)
린네 협회 (FLS)
지질학회 (FGS)

2. 생애

영국 레스터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곤충학을 공부했다. 젊은 시절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와 교류하며 자연과학에 대한 열정을 키웠고, 함께 아마존강 유역 탐험을 계획하게 된다.

1848년부터 11년간 아마존 우림에서 방대한 양의 동식물 표본을 수집했으며, 특히 곤충 분야에서 8,000여 종의 신종을 발견하는 등 큰 업적을 남겼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의 대표 저서 『아마존 강의 자연주의자(The Naturalist on the River Amazons)』의 바탕이 되었다.

귀국 후에는 아마존에서의 관찰을 바탕으로 의태에 관한 중요한 연구를 발표하여 찰스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을 뒷받침했다. 이 연구는 후에 베이츠 의태로 명명되며 진화 생물학에 큰 기여를 했다.

말년에는 왕립지리학회의 부비서로 활동하며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으나,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딱정벌레목 곤충 연구를 지속하여 해당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여러 학회에서 활동하며 학문적 공로를 인정받았으나, 1892년 기관지염 등으로 사망했다. 그의 탐험과 연구는 19세기 자연사 연구와 진화론 발전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2. 1. 유년 시절

헨리 월터 베이츠는 1825년 영국 레스터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3] 당시 많은 자연 과학자들처럼 정규 고등 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약 12~13세까지 일반적인 교육을 받은 후, 양말 제조업체의 견습공이 되었다.[3] 그는 도서관이 있는 기계공학 연구소(Mechanics' Institute)에 다니며 독학했고, 여가 시간에는 찰른우드 숲(Charnwood Forest)에서 곤충을 채집하는 데 몰두했다. 곤충 동정에 재능을 보여 1843년, 18세의 나이에 딱정벌레에 관한 짧은 논문을 《동물학 저널》(Zoologist) 창간호에 게재하며 학계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3]

1844년,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레스터 콜레지에트 학교(Leicester Collegiate School) 교사로 부임하면서 베이츠와 친구가 되었다. 월리스는 원래 식물학에 관심이 많았으나, 베이츠를 만나 곤충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두 사람은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인구론, 제임스 허턴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저서,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그리고 당시 진화론적 사고를 대중화시킨 로버트 체임버스의 익명 저서 《창조의 자연사의 흔적》(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 등 당대의 중요한 과학 서적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자연과학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또한 윌리엄 H. 에드워즈(William H. Edwards)가 쓴 아마존 탐험기 《아마존 강을 거슬러 오르는 항해》(Voyage Up the River Amazons)를 읽고 아마존 지역 탐험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4][5] 이 책은 두 사람이 훗날 아마존으로 떠나 경력을 시작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1845년 월리스는 측량사로, 베이츠 역시 다른 일자리를 구해 레스터를 떠났지만, 이후에도 편지를 통해 꾸준히 교류를 이어갔다.

2. 2. 아마존 탐험 (1848-1859)

1847년 월리스(Wallace)와 함께 아마존 강 유역 아마존 열대우림 탐험을 계획했다. 이 계획의 핵심은 현지에서 채집한 표본을 런던으로 보내 판매하고, 판매 대리인이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탐험 경비를 충당하는 것이었다. (탐험의 주된 목적이 '종의 기원 문제 해결을 위한 사실 수집'이었다는 주장은 1863년 베이츠가 쓴 『아마존 강의 자연주의자(The Naturalist on the River Amazons)』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6]) 두 사람은 런던에서 만나 탐험을 준비하며 주요 컬렉션의 남아메리카 동식물을 살펴보고, 박물관과 수집가들이 원하는 목록을 확인했다.[7] 대영박물관에서는 포유류조류 채집을 약속받았고, 후커로부터는 식물 표본 채집을 의뢰받았다.[21] 그 외의 표본은 중개인을 통해 판매하기로 했다. 베이츠와 월리스가 주고받은 편지들은 [http://www.nhm.ac.uk/wallacelettersonline Wallace Letters Online]에서 확인할 수 있다.

thumb과의 모험"]]

1848년 4월, 베이츠와 월리스는 리버풀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여 5월 말 파라(현재 벨렝)에 도착했다. 첫해에는 도시 근처 빌라에 머물며 새와 곤충 등을 채집했다. 몰포나비를 포함해 300종이 넘는 신종 생물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 독립적으로 채집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이유는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으나 이후 우호적으로 재회하고 평생 친구로 지낸 점으로 미루어 보아 불화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21]

베이츠는 토칸틴스강 유역의 카메타로 이동했다. 1850년 파라로 돌아와 월리스와 잠시 재회한 후, 아마존강을 따라 오비두스, 마나우스를 거쳐 상류인 솔리무이스(상아마존강)의 에가(현재 테페)에 도착했다. 테페는 이후 4년 반 동안 그의 탐험 기지가 되었다.[17] 그는 테페 지역에서 거북이가 일상적으로 식용되며 곤충이 특히 풍부하다고 기록했다. 이 지역에서만 7,000종 이상의 곤충(나비 550종 포함)을 발견했다.[18] 또한 아픈 투칸(현지어로 '톡코')을 간호하여 회복시킨 일화도 남겼는데, 이 투칸은 지능적이고 재미있는 동반자였으며 주로 과일을 먹지만 고기와 생선도 가리지 않는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고 한다.[19]

1855년 파라로 돌아오던 중 황열병에 걸렸으나 회복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형을 따라 아마존에 와 있던 월리스의 동생 허버트 월리스가 같은 병에 걸려 사망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건강을 회복한 베이츠는 다시 아마존 강 상류로 돌아가 4년간 더 채집 활동을 이어갔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원주민들의 풍습과 의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인종적 편견이 적었던 그의 시각은 당시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또한 아마존 유역의 지리 조사도 병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1년간의 긴 탐험을 마치고 1859년 영국으로 귀국했다. 먼저 귀국했던 월리스가 배의 화재로 모든 표본을 잃었던 불운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베이츠는 수집한 표본들을 세 척의 배에 나누어 보냈다. 그가 아마존에서 수집하여 영국으로 보낸 표본은 총 14,000종 이상의 생물(주로 곤충)이었으며, 이 중 8,000종 이상이 신종이었다. 표본의 양이 워낙 방대하여 처음에는 그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다윈헉슬리 등의 지지를 받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귀국 후 3년 동안 그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아마존 강의 자연주의자(The Naturalist on the River Amazons)』를 집필했는데, 이 책은 자연사 탐험 기록 문학의 걸작 중 하나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

2. 3. 영국 귀국과 진화론 연구

베이츠는 후커, 프리츠 뮬러(뮬러 의태 발견자), 헉슬리 등과 함께 월리스다윈의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지지한 저명한 박물학자 중 한 명이었다.

1855년 말레이 제도에서 표본을 채집하던 월리스가 진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박물학회에 보고하자, 베이츠는 이에 동의했다. 이후 1858년 월리스가 다윈과 진화에 대해 의견을 나눈 사실을 베이츠에게 알렸을 때도 지지의 뜻을 밝혔다. 1859년 다윈이 기념비적인 저서 『종의 기원』을 출간하자, 베이츠는 이듬해인 1860년 다윈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베이츠의 지지에 감사하는 다윈의 답장이 남아 있다.[22]

1861년, 베이츠는 런던 곤충학회에서 아마존 탐험 중 관찰한 의태 현상에 대한 중요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의태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의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이며, 이는 종의 기원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하며 자연 선택 이론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특히, 같은 종의 나비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종을 흉내 내는 현상을 관찰하고, 중간 형태의 무늬를 가진 개체는 포식자에게 쉽게 잡아먹혀 사라지기 때문에 뚜렷한 의태 패턴만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자연 선택이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제시되었으며, 이러한 연구는 후에 베이츠 의태로 알려지게 된다.

1862년에는 그의 유일한 저서이자 대표작인 『'''아마존 강의 박물학자'''』(The Naturalist on the River Amazonseng)를 출간했다. 이 책의 출판은 다윈의 적극적인 권유와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윈은 출판사를 연결해주고 원고 교정까지 직접 도왔다. 이 시기 베이츠는 월리스와 함께 다윈의 집이 있는 다운(Down)을 방문하기도 했으며, 라이엘과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과도 교류하게 되었다.

베이츠는 다윈의 이론을 전반적으로 지지했지만, 홍적세의 "적도 냉각" 가설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윈 역시 베이츠의 반론을 쉽게 반박하기 어렵다는 점을 후커에게 인정했다. 그럼에도 베이츠는 꾸준히 다윈에게 연구 자료를 제공하며 학문적 교류를 이어갔고, 다윈은 이후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에서 베이츠의 연구와 기여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베이츠의 연구는 종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에서 다윈에게 큰 힘이 되었다.

2. 4. 말년

1863년 사라 앤 메이슨(Sarah Ann Mason)과 결혼했다.[8] 아마존 탐사에서 돌아온 후, 표본 판매 수익은 10년간의 채집 활동 경비를 제외하면 800GBP밖에 남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 금액으로는 시골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기에, 박물학 연구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

결국 1864년 런던으로 이주하여 왕립지리학회의 부비서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학회의 상급 직책은 귀족들의 명예직이었기 때문에, 베이츠가 사실상 비서 역할을 수행했다.[8] 그는 왕립지리학회에서 영국 정부의 식민 사업을 지원하거나 데이비드 리빙스턴 구조대를 파견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지리학회에서 일하면서도 생활 유지를 위해 부업이나 서적 편집을 병행해야 했다.

연구 분야도 바꾸어, 기존의 나비목(Lepidoptera) 컬렉션을 프레더릭 뒤케인 고드먼과 오스버트 살빈에게 판매하고, 주로 딱정벌레목(Coleoptera) 곤충, 특히 하늘소과(Cerambycidae), 딱정벌레과(Carabidae), 길앞잡이과(Cicindelidae) 연구에 집중하여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다.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여러 학회에서 활동했다. 런던곤충학회 회장을 두 차례(1868년~1869년, 1878년) 역임했으며, 1871년에는 런던 린네 학회 회원으로, 1881년에는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브라질 황제로부터 장미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왕립지리학회에서의 과중한 업무는 그의 건강에 부담을 주었다. 동료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부고 기사에서 베이츠의 의태 연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왕립지리학회의 "단순한 사무 작업의 끊임없는 노력과 압박"이 그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생명을 단축시켰다고 안타까워했다.[10] 베이츠는 사망 직전까지 왕립지리학회에서 일하며 다른 자연과학자들의 열대 현지 조사를 지원했지만, 정작 본인은 다시 열대를 방문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1892년 런던에서 인플루엔자기관지염(현대의 폐기종일 가능성도 제기됨)으로 사망했다.[9] 그가 수집한 방대한 곤충 표본의 대부분은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 소장되었으며, 일부는 개인 수집가들에게 넘어갔다. 베이츠는 사망 전까지도 방대한 참고 자료 컬렉션을 보유하며 곤충 동정에 관한 자문에 응했다.[9]

3. 주요 업적

헨리 월터 베이츠는 찰스 다윈,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와 함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을 지지했던 중요한 자연주의자이자 탐험가 중 한 명이었다.[11] 그는 조지프 달턴 후커, 프리츠 뮐러, 리처드 스프러스, 토마스 헨리 헉슬리 등 당대의 다른 주요 학자들과 함께 활동했다.

베이츠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아마존 나비 연구를 통해 의태 현상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설명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베이츠 의태 개념을 발전시켰다.[12] 베이츠 의태는 포식자에게 맛이 좋거나 무해한 종이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맛이 없거나 유독한 종의 모습이나 색깔을 흉내 내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침이 없는 꽃등에 중 상당수가 침을 가진 벌목(말벌이나 꿀벌)의 경고색을 모방하는 것이 대표적인 베이츠 의태 사례이다. 이러한 모방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포식자를 속여 생존율을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13]

베이츠는 아마존의 네발나비과 나비와 이를 모방하는 다른 나비 종들을 관찰하며, 포식자들이 경험을 통해 맛없는 종을 피하게 되고, 그 결과 맛있는 모방종이 보호받는다는 가설을 세웠다. 경고 신호와 의태에 대한 이러한 그의 연구는 진화 생태학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14]

베이츠를 비롯해 월리스, 뮐러 등은 베이츠 의태와 뮐러 의태가 자연선택이 실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보았으며, 이는 오늘날 생물학계의 표준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15] 의태 연구는 현재까지도 활발히 진행 중이며, 종 분화, 유전학, 발생생물학 등 다양한 생물학 분야와 연관되어 연구되고 있다.[16]

헨리 월터 베이츠의 이름은 남아메리카 보아뱀의 한 종인 ''코랄루스 바테시이''[20]의 학명과 그가 발견한 중요한 진화 메커니즘인 베이츠 의태 이론에 남아 기려지고 있다.

3. 1. 의태 연구

헨리 월터 베이츠는 찰스 다윈,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와 함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을 지지했던 뛰어난 자연주의자이자 탐험가 중 한 명이었다.[11][22] 그는 조지프 달턴 후커, 프리츠 뮐러, 리처드 스프러스, 토마스 헨리 헉슬리 등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과 교류하며 진화론 발전에 기여했다.

베이츠는 아마존에서 나비를 연구하면서 의태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설명을 제시했으며, 특히 그의 이름을 딴 베이츠 의태 개념을 발전시켰다.[12] 베이츠 의태는 맛이 좋거나 무해한 종이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맛이 없거나 유독한 종의 모습이나 행동을 흉내 내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침이 없는 꽃등에 중 다수가 침을 가진 말벌이나 꿀벌의 경고색을 모방하는 것이 흔한 베이츠 의태의 사례이다. 이러한 의태는 모방하는 종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며, 모방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13]

베이츠는 아마존의 네발나비과(Heliconids, 긴 날개 나비) 나비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그는 이 나비들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고 기록했다.

# 개체 수가 풍부하다.

# 눈에 잘 띄고 느리게 날아다닌다.

#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 성충은 꽃을 찾아다닌다.

# 유충은 함께 모여 먹이를 먹는다.

그는 "숲에서 느리게 날아다니는 네발나비 무리가 새나 잠자리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또한 쉬고 있을 때 도마뱀이나 다른 나비를 잡아먹는 파리목 도둑파리에게 괴롭힘당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디스모르피아''(''Leptalis'')와 같은 흰나비과 나비들은 자주 공격받는다고 관찰했다.

베이츠는 많은 네발나비과 종들이 자신들을 모방하는 다른 종(주로 흰나비과)과 함께 발견되며, 비행 중에는 두 종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모방종들은 모델이 되는 네발나비과와 같은 숲 지역에서, 종종 함께 날아다녔다. 즉, 포식자에게 맛이 없고 풍부한 종(모델)의 모습과 행동을, 드물고 맛있는 종(모방자)이 흉내 내는 것이다. 베이츠는 포식자들이 경험을 통해 맛없는 종을 피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 결과 맛있는 모방종은 모델과 닮은 정도에 비례하여 포식자로부터 보호받게 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경고색과 의태에 대한 이러한 검증 가능한 가설은 진화 생태학 분야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14]

1861년 베이츠는 런던 곤충학회에서 자신의 의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의태가 가져오는 이익은 명확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태의 기원에 관한 문제이며, 이는 종의 기원과 같은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아마존에서의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자연선택 이론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는 또한 같은 종의 나비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종을 모방하는 현상을 관찰했는데, 이는 중간 형태의 무늬를 가진 개체들이 포식자에게 쉽게 잡아먹혀 사라지고, 각 지역의 모델과 유사한 형태만 살아남는 자연선택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베이츠와 월리스, 프리츠 뮐러는 베이츠 의태와 뮐러 의태가 자연선택의 강력한 증거라고 믿었으며, 이는 오늘날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표준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15] 의태에 대한 현장 연구와 실험은 현재까지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종 분화, 유전학, 발생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연구되고 있다.[16]

베이츠의 의태 연구는 그가 연구했던 나비 무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당시 ''Heliconidae''로 통칭되던 나비 무리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하나는 유리나비족(Ithomiini)(과거 Danaoid Heliconids)으로, 이들은 유리나비아과(Danainae)와 가까우며 유충과 성충 모두 독성 식물(밀크위드 등)을 통해 독성을 얻는다. 다른 하나는 네발나비족(Heliconiini)(과거 Acraeoid Heliconids)으로, 이들은 네발나비족(Acraeini)과 관련이 있으며 유충 시기에 독성이 있는 ''Passiflora'' 식물을 먹어 독성을 얻는다. 두 그룹 모두 현재 네발나비과(Nymphalidae)에 속한다.

헨리 월터 베이츠의 이름은 남아메리카 보아뱀의 한 종인 ''코랄루스 바테시이''[20]의 학명과 그의 중요한 과학적 발견인 베이츠 의태 이론에 남아 기려지고 있다.

3. 2. 곤충학 연구

베이츠는 상아마존(솔리모이스 강)의 에가(현재의 테페)에서 약 1년 동안 머물렀다.[17] 그는 이곳에서 곤충이 특히 풍부하게 발견된다고 보고했으며, 7,000종이 넘는 곤충을 발견했는데, 이 중에는 550종의 나비가 포함되어 있었다.[18]

그의 초기 연구는 Heliconidae|헬리코니데la라고 명명한 눈에 띄는 나비 무리에 집중되었다. 그는 이 무리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유리나비족(Danaini)(유리나비아과(Danainae) 참조)과 유연 관계가 있다고 본 Danaoid Heliconids|다나오이드 헬리코니드영어이며, 두 번째는 네발나비족(Acraeini)과 관련 있다고 본 Acraeoid Heliconids|아크라이오이드 헬리코니드영어이다.

전자는 현재 유리나비족(Ithomiini)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리나비아과(Danainae)의 유리나비속(Danaus) 나비들과 가까운 관계이다. 후자는 현재 족 네발나비족(Heliconiini)으로 분류되며, 네발나비속(Heliconius) 나비들이 여기에 속한다. 두 그룹 모두 네발나비과(Nymphalidae)에 속하며, 공통적으로 독성이 있는 식물을 먹는 경향이 있다. 밀크위드 식물은 유리나비아과(Danainae)의 유충과 성충 모두에게 독성 배당체를 제공한다. 반면, 유리나비족(Ithomiini)은 성충 시기에 먹는 식물에서 독성을 얻는다. 네발나비족(Heliconiini) 유충은 독성이 있는 시계꽃속(Passiflora) 덩굴을 먹이로 삼는다.

3. 3. 지리학 연구

왕립지리학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지리학 분야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학회 활동을 통해 당시 영국의 식민 사업 확장 과정에 필요한 지리 정보 제공 등에 관여하기도 했으며, 아프리카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찾기 위한 구조대 파견 논의에도 참여했다. 또한,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를 비롯한 동료 자연 과학자들이 열대 지역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할 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보나 조언을 제공하며 이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했다. 베이츠는 아마존 탐험 등을 통해 직접 수집하거나 다른 탐험가들로부터 얻은 방대한 지리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여, 19세기 지리학 지식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4. 한국과의 관계

헨리 월터 베이츠의 이름은 한국과 관련된 생물 분류나 학술 용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베이츠 의태(Batesian mimicry)는 그의 이름을 딴 중요한 생태학 개념이다. 또한, 그의 이름은 여러 곤충의 학명에 헌명되기도 했다.


  • 루리보시카미키리 ''Rosalia batesi'' Harold, 1877
  • 베이츠히라타카미키리 ''Eurypoda batesi'' Gahan, 1894
  • 베이츠야사카미키리 ''Leptoxenus ibidiiformis'' Bates, 1877
  • 베이츠히라타고미무시 ''Euplynes batesi'' Harold, 1877


한편, 이름이 비슷한 조류학자 조지 라티머 베이츠(George Latimer Bates)도 있으므로 혼동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5. 저서


  • 1843년: "습한 곳에 서식하는 딱정벌레목 곤충에 대한 기록". ''동물학자'' (The Zoologisteng) 1권: 114–115쪽. [https://archive.org/details/bates-1843-zoologist 전문 보기]
  • 1862년: "아마존 계곡 곤충상에 대한 기여. 나비목: 네발나비과". ''린네 학회 회보'' (Transactions of the Linnean Societyeng) 23권 (3): 495–566쪽. [https://zenodo.org/record/1447544 전문 보기]
  • 1863년: ''아마존 강 유역의 자연주의자'' (The Naturalist on the River Amazonseng). 2권. 런던: 머레이 출판사. [https://archive.org/details/naturalistonrive01bate 1권], [https://archive.org/details/naturalistonrive02bate 2권]. 베이츠의 가장 유명한 저서로, 아마존에서의 11년간의 탐험과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 1864년: ''아마존 강 유역의 자연주의자''. 제2판. 런던: 머레이 출판사. 1권으로 된 축약판으로, 자연사 관련 내용이 일부 삭제되었다. 일반적으로 재인쇄되는 판본이지만, 전문적인 연구에는 1863년 초판이나 1892년 판본이 권장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2009년 재발행, ISBN 978-1-108-00163-2)
  • 1878년: ''중앙아메리카, 서인도 제도 및 남아메리카'' (Central America, the West Indies and South Americaeng). 런던: 스탠포드 출판사. A. H. 키인(A. H. Keane)의 민족학적 해설 포함. 폰 헬발트(von Hellwald)의 ''Die Erde und ihre Volker''를 기반으로 했으나, 동식물의 자연사와 지리적 관계 부분은 전적으로 베이츠가 저술했으며, 다른 부분도 광범위하게 개정하고 업데이트했다. 1882년에 개정판 출간. [https://archive.org/details/dli.granth.86124/page/n3/mode/2up 1878년판 보기]
  • 1881년–1884년: ''Biologia Centrali-Americana: Insecta Coleoptera''. 1권 1부. 중앙아메리카 생물상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로 출간된 딱정벌레목 관련 저술.
  • 1886년–1890년: ''Biologia Centrali-Americana: Insecta Coleoptera: Pectinicornia and Lamellicornia''. 2권 2부.
  • 1879년–1886년: (데이비드 샤프(David Sharp)와 공저) ''Biologia Centrali-Americana: Insecta Coleoptera: Phytophaga'' (일부). 5권.
  • 1892년: ''아마존 강 유역의 자연주의자''. 에드워드 클로드(Edward Clodd)가 쓴 저자 회고록 포함. 런던: 머레이 출판사. [https://archive.org/details/naturalistonri00bate 전문 보기]. 베이츠 사후에 출판된 판본으로, 1863년 초판의 전체 내용을 담고 있으며 클로드의 간략한 전기가 포함되어 중요하다.

참조

[1] 논문 A Delicate Adjustment: Wallace and Bates on the Amazon and 'The Problem of the Origin of Species
[2] 서적 The Naturalist on the River Amazons, With a Memoir of the Author by Edward Clodd Murray
[3] 논문 Notes on Coleopterous insects frequenting damp places https://www.biodiver[...]
[4] 서적 Voyage Up the River Amazons, Including a Residence at Pará
[5] 서적 Henry Walter Bates FRS 1825–1892: Explorer, Scientist and Darwinian Leicestershire Museums
[6] 논문 A Delicate Adjustment: Wallace and Bates on the Amazon and 'The Problem of the Origin of Species
[7] 서적 The Naturalist on the River Amazons Murray
[8] 서적 The Butterfly Hunter: The Life of Henry Walter Bates University of Buckingham Press
[9] 서적 Memories Chapman & Hall
[10] 논문 H. W. Bates, The Naturalist of the Amazons http://people.wku.ed[...] 1892-02-25
[11] 논문 On the Tendency of Species to form Varieties; and on the Perpetuation of Varieties and Species by Natural Means of Selection
[12] 서적 Mimicry Methuen
[13] 서적 Mimicry in Plants and Animals World University Library
[14] 서적 Avoiding Attack: The Evolutionary Ecology of Crypsis, Warning Signals and Mimicry
[15] 서적 Henry Walter Bates FRS 1825–1892: Explorer, Scientist and Darwinian Leicestershire Museums
[16] 논문 The speciation revolution
[17] 문서 Ega/Tefé location description
[18] 서적 The Naturalist on the River Amazons, With a Memoir of the Author by Edward Clodd Murray
[19] 서적
[20] 서적 The Eponym Dictionary of Reptiles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1] 서적 ベイツ - アマゾン河の博物学者
[22] 웹사이트 http://www.darwinpro[...]
[23] 서적 The naturalist on the river Amazons, with a memoir of the author by Edward Clodd Murray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